우리 마을 네 학교 샘들이 모여 명랑운동회를 하기로 한 날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난 피곤이 쌓여 응원이나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행을 맡은 두 샘을 보자 그런 생각들이 조금 잊혀졌다. 어느새 놀이기구의 엉킨 줄을 함께 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를 맞아 준 그 샘들의 밝은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노고가 내게 힘을 준 거 같다.
시작 전,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서로 어색하다. 올해 새로 합류한 학교샘들이 작년 우리들처럼 뻘쭘해하신다. 우리도 왜 이런 걸 하는지 잘 모르고 왔었다. 끝나보면 아는데... 밝게 맞아 드리기라도 했음 좋으련만 난 못 그런다.
시작할 때 행사를 준비한 학교 교장샘이 말씀하셨다.
' 이게 교육적인지 아닌지, 계속 해야할 행사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라.' 뭐 정확하진 않지만 약간의 문장을 덧붙여 그렇게 말씀하셨다.
' 뭘까? 세상에 길게 보면 교육적이지 않은 게 있나? 음... 있을 수도 있지... 어떤 경험이든 지나고 나면 다 도움이 될 수도 ... 아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주관적인 거 아닌가? 사람마다 다 다를텐데... 판단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나? 걍 대표성을 가진 몇몇이 결정하는 거 아닌가? ...'
뭔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경기 시작~
꼬리따기, 줄바토런, 패드민턴, 강강술래...
우리 학교샘들은 다 운동을 잘 한다. 안 그런 난 쉬려고 했는데 중학년이 너무 적게 오는 바람에 다 뛰었다. 에고... 아직도 다리가 쑤신다. 근데 신기한 건 움직일수록 힘은 들어도 기분은 좋아진다는 거다.
강강술래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거리를 하나 얻었다.
강강술래할 때, 이리뛰고 저리뛰고 재밌게 뛰다가 동그랗게 서서 노래에 맞춰 손뼉을 쳤다. 노래부르는 사람이 누구 나오라면 원 안으로 들어가 춤 추고 제자리로 오는 마당이다. 귀걸이 한 사람, 안경 낀 사람 등등 부르다가 생각이 잘 안난다고 하시더니 잘 생긴 사람, 예쁜 사람을 불렀다.
올해 울 학교 아이들 성폭력 교육할 때 강사분이 외모에 대해 말하는 것도 성폭력이라고 하셔서 우리 반은 그런 얘기 안하고 있는데...
그런데 잘 생긴 사람, 예쁜 사람 부를 때 우리 10여명 중에서 딱 두 명만 두 번 다 나갔다. 그 중 하나가 나다.
잘 생긴 사람을 부르는 순간, '모든 자연이 다 있는 그대로 잘났지.' 하는 생각과 성폭력 교육도 생각났다. 그리고 난 모두가 서로 나오려고 해서 다같이 크게 웃을 줄 알았다. 우린 아직 덜 친해졌나보다.
예쁜 사람을 부를 때, 잘 생긴 거랑 뭐가 다르랴 하며 또 나갔다. 그런데 저녁 먹고 샘들이랑 얘기하다보니 남자는 잘생기고 여자는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편견을 심어 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우리 샘들~
아이들과 이 이야기와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노래를
불러야겠다. 아, 먼저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는지 봐야겠다.
마지막에 정리하며 상품 소개를 했다.
작년에 처음이라 사람들이 많이 열심히 참여하게 하고 싶었는지 많은 생활용품이 상품으로 진열됐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업의 쓸데없이 비싼 보온물병에 환호하며 나도 매우 열심히 임했다. 물론 상품의 역할이 전부는 아니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자발적인 의지를 북돋우고자 상, 벌 대신 내적 보상을 하자, 경쟁을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이 행사가, 이 물건들이 뭘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친목 도모가 목적인데 가끔 살벌하던 공이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우리 학교에서 상품을 준비하게 됐고, 다같이 의논을 해본 후, 흔한 머그컵이지만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물품을 샀다. 세월을 이길 수 없어 하늘에서 싸우고 계신 할머니들을 기리는 마음이 잘 통한 것 같다. 역시~
아, 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교장, 교감샘이 많은 팀과 평교사팀의 패드민턴 경기에서 평교사팀이 이겼다.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나 신규 때나 무한도전 등 많은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왠지 모르게, 티 안나게 살살 해드리는 경우를 많이 봤었는데, 오늘 우리 교장샘 배가 좀 맞았던 거 같다. ㅎ
격없이 민주적인 교장, 교감의 등장으로 인한 스포츠 정신의 부활!!
울 마을학교가 참 자랑스럽다.
음... 다른 학교 샘들과도 서서히 친해지고 있다. 뭘 같이 하기 편해질 것 같다. 그러므로 난 명랑운동회를 계속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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