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잠이 잘 안왔다. 긴장됐다. 학교를 8년만에 옮기니, 담임을 2년만에 바꾸니 변화에 익숙하지 않았나.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나. 3시쯤 잠이 깨어서 작년 문집의 아이들 사진과 글, 학교자치 관련 책을 읽다보니 5시에 다시 잠이 와서 자고 7시에 부랴부랴 전철을 탔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책을 읽으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까 싶어 챙겼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이 많이 와서인지 전철에 유난히 흔들려 사고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걱정이 많네...
그러다가... 중간 중간 눈쌓인 멋진 산들이 내 시선을 끌었고, 머리가 비워졌다. 계속 보다보니 마음도 편안해졌다. 괜찮다고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역시 자연이다.
도착해서 내 차까지 걸어가는데 내 발걸음이 신났다. 사뿐사뿐? 발끝에 힘이 들어가 위로 들썩이며 걷는 내가 느껴졌다. 아침에 0도였는데 그렇게 춥지 않고 사람들이 거의 없는 길을 걷는 게 좋았다. 생각해보니 이어폰 안 낀지도 좀 됐네. 항상 뭔가를 듣고 있으려고 했는데... 한 10분 걷는 게 참 기분이 좋다.
앗... 비오고 눈와서 사이드미러가 꽁꽁 얼었다. 동료가 길 좋다고 알려줘서 맘 편히 갈 수 있겠다 했는데...
가는 길을 생각해보니 오른쪽 거울은 필요가 없다. ㅎ 그냥 출발...
와... 밤에 눈 멈춘 후 엄청난 수의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길을 다 녹여 놓았나보다. 너무 감사하게 길이 아무렇지도 않다...편하게 눈을 즐기며 천천히 운전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찍었다. 맘 같으면 어디에 차 대고 찍고 싶었다. 아니... 그냥 영상 찍으며 걸어가고 싶었다. 어젠 눈 때문에 걱정했는데 선물을 내려준 거 같았다. 겨울왕국..
도착하니 이미 샘들이 눈을 많이 치워놓으셨다. 이런... 죄송해라... 넘 감사하다... 그리고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샘들 만나서 정말정말 학교 올 맛이 난다.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
입학식 공연연습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과 급히 인사나누고 그림 골라 자기 기분 표현한 후 나갔다. 눈 녹기 전에 놀아야 하니까. 이렇게 예쁜데 언제 또 눈이랑 놀지 모르는데... 어찌 교실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
전학 온 아이는 눈싸움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첫날부터 맘 상하는 활동을 할 순 없다. ㅎㅎ 거절.
"싸우는 거 말고 같이 할 수 있는 거 해보자."
다행히 순순히 따라준다. 그러더니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고 셋은 열중한다. 둘은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눈 속의 아이들, 나무, 하늘, 땅. 그림이다.
그늘을 찾아 미끄럼틀 아래 눈사람을 만들어 두고 미끄러운 미끄럼틀 거꾸로 올라가기 놀이를 한다. 참 아이들은 기발하다. 전학 온 아이가 올라가는데 눈을 뿌려 싸움이 날 뻔했지만 어느새 잊고 열심히 논다.
오바쟁이인 나. 순간 숨이 멎어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멋있는 곳에 아이가 서 있었다. "잠깐만!", "찰칵!"
"공연 연습해야 하니까 5분만 더 놀고 들어가자~."
"네~" (앗! 한 번에?? 더 안 조르고?)
들어와서 젖은 양말과 장갑을 말리고 글공책에 눈에서 논 거 글과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열~심히 하더니 3줄 썼다. 앗. 흑백을 좋아한다며 색칠도 거의 안한다. 음...
10:30 입학식 공연준비. '내 나이가 어때서' 개사곡을 준비했다. 1학년 샘이. 할머니 입학생들을 위한 노래다.
"학교 가기 딱 좋은 나인데~"
11:20 입학식 시작! 난 영상 담당... 근데... 앞부분 몇 장면 찍으니 저장용량 부족..ㅜㅜ 다른 분들에게 얼른 부탁할걸... 그냥 즐겼다. ㅜㅜ 이렇게 후회하는 일 없게 가만히 있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 7년째인데... 여전히 그러고 있다.
3,4학년 내나이가 어때서. 우쿨렐레, 마라카스 공연 - 역시 트롯이 대세! 반응 최고였다.
4,5학년 시월에 어느 멋진 날에. 리코더 공연. - 아이들 공연인데 우아하고 좋았다. 요 녀석들 봐라~~^^
6학년 아이유 노래.. 칼림바 공연. - 최고 선배답게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난다. 몇 년 더 산 건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교사 시 낭송. - 전날 밤에 단톡방에서 함께 다듬은 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읽어주셨다. 결국 학교는 신나게 놀면 된다는... 누군가 많이 안 좋아할 시였다. ㅎ
끝.
엥? 입학생 소감 듣는 거 뺀 거임????? 그게 하이라이트인데????
분교장 맘대로 뺐다. 음... 요거 내 방식인데... ㅎㅎㅎ 고집부리기.. 생각이 다르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가끔 그러니 뭐 인정.
내년엔 주인공이 주인되는 행사로 꾸며 봐야겠다. 아니 앞으로 모든 행사를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주인공이 한 마디 말도 못하는 행사라니...
교실에서 거의 말하지 않고 급식을 먹고(이 놈의 코로나ㅡㅡ), 사물함 정리하고, 마침시 낭송하고 헤어졌다. 근데 3명은 더 논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논다. 전학 온 친구는 데리러 온 엄마를 돌려보내고, 4:10쯤 갔다. 탁구도 하고, 스카이 콩콩도 타고, 유치원샘이 주신 풍선으로 배구도 하고, 함께 헤딩해서 안 떨어트리기 놀이도 했다. 같이 놀아주길 바라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명 남은 아이는 제본하는 것도 도와주고, 글쓰기 숙제도 종알종알 말을 걸며 하고 간다. ㅎㅎㅎ
사랑스럽다. 돌봄교실도 있는데 나에게 말 걸어 주어서 고맙지. 고마워해야지. ^^ 사이좋은 친구 이간질 시키는 방법도 알려준다. 어디 코미디 프로에서 봤단다. ㅎㅎㅎ 그런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나에게 묻는다. ㅎㅎㅎ같이 내일 해보자고 했는데 나도 자신이 없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의도가 불순해서 그렇지 않을까? ㅎ
2시에 전 직원 모임을 했는데 샘들이 다 따뜻하다. 업무 전달, 힘들었던 얘기, 재밌었던 얘기 나누고, 할머니 입학식 이야기도 했다. 뉴시스 기사로 뜬단다. 오호~~ 학교 엄청 커지는 거 아닌가... ㅎ
어제 못한 신입생 소개, 교사 소개는 오늘 1교시에 하기로 했다. 기대된다.
나는 반 아이들 너무 착하고 잘 논다고 얘기했다. 뭐 이런 아이들이 다 있냐고.
한 샘이 아이들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다. 전교생 18명. 그런 거 같다. 근데 그거 말고 더 이유가 많을 거 같다. 연구할 사람 어디 없나...
고학년이 동생들 교실에 와서 엄마, 아빠같은 눈으로 챙겨주고 가고,
특수반 친구 사물함을 먼저 정리해주고, 자기 건 대충 쑤셔 넣고 마무리하기도 하고,
다른 반으로 간 선배들 물건이 나오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갖다주고 온다. 주체적이다. 앗. 여기 샘들 같은 느낌.
사랑 많고, 교장 없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기를 아끼지 않는, 부탁하면 뭐든 들어주시려고 노력하는, ...여기 샘들.
친구랑 저녁 먹는데 이 사진이 교사단톡에 올라와있었다.
와... 내가 아이들 예쁠 때 사진 찍는 것처럼 누군가 우리를 찍어주니 넘 좋다. 그것도 구도 완벽하게!!
나도 울 학교 모든 사람들 다 찍어줄 거다.
요즘... 내 눈이 반짝거린다. 외국배낭여행할 때만 반짝이던 내 눈이 요즘 신기하게 반짝거린다.
사는 게 재밌나보다. 근데 눈빛은 어떨 때 변하지? 이거 논문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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