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20190403 선생님, 4월 14일에 뭐해요?

홍풀 2019. 4. 3. 22:12

3학년인 우리반 땡글이가 아침에 오자마자 내게 물었다.

"선생님, 4월 14일에 뭐해요?"

앗, 6학년 할 때 전혀 받아보지 못한 뜬금없는 질문.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글쎄... 샘은 일요일이라 그냥 집에서 쉴 거 같은데?"

땡글이가 크게 말한다. "전 여행 가요~"

뜨앗, 자기 여행하는 거 자랑하고 싶어서 바닥을 까는 이 기술은 정말 생전 처음이다. 6학년을 너무 오래한 내 탓인가?

 

"그..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땡글이가 얘기하고 싶었구나?"

"네, 우리 가족이 괌으로 가요. 따뜻해서 수영도 할 수 있어요."

"오~~~ 좋겠다~~~ 바다에서 실컷 놀겠네~"

"네, 19일에 오는데 피곤해서 학교 못 온대요. 그래서 한 주 전부 다 못 와요."

 

먼저 와서 뒤에 앉아있던 귀염돌이,

"야, 좋겠다. 나도 데리고 가라."

땡글이 왈,

"그건 안되지, 넌 사진찍은 종이도 없고...."

 

나, "왜 안 돼~ 잘 생각해 봐. 땡글아."

" 귀염돌아, 그런데 얘네 가족들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할 수도 있어. 너는 이 담에 아빠랑 엄마랑 누나랑 가. 누나 영어 더 잘하게 되면."

 

귀염돌이는 자기가 영어를 못 해서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말을 안 한다. 땡글이도 위기를 모면했다는 듯 잠잠해졌다.

 

음.... 부러움이란 뭘까? 귀염돌이는 왜 부러웠을까? 바다? 외국? 비행기? 그냥 수영하는 게 부러운 거면 좋겠다.

 

어르신들도 요즘 해외여행 자랑이 한창이시다. 엄마도 은근 부러워하신다. 부담을 안 주려 하시지만 엄마 친구 누구는 안 가본 데가 없단다. 하긴 나도 그렇다. 돈과 시간과 특별한 경험을 한꺼번에 누리는 걸 안 부러워하긴 힘들다.

 

그치만 난 땡글이가 없을 때의 우리반도 나름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경험도 물질의 소비로 우열을 가릴 순 없다.

누구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 똑같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그 때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하루하루 삶의 지혜를 조금씩 배워나가고, 자신을 잘 알고 마음을 표현하며 당당히 살아가면 되는 거다.

 

우리 반 나머지 친구들은 그렇게 한 주 동안 잘 지내고 있을 거다. 땡글이도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니까 마찬가지로 잘 지내고 올 거다.

 

귀염돌이에겐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언젠가 기회가 되면 ... 이런 얘기를 나누고 싶다. 3학년이랑은 이런 얘기가 통하려나...

 

그리고 나 오늘 4월 14일에 할 일이 생겼다.

4.16 추모 기념식에 갈 거다. 동생이 그 날 노래를 한다고 해서 나도 자랑하고 싶다. 동생과 같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서 행복하다. 나도 땡글이한테 자랑해볼까?헤헤

근데 난 뭐라고 바닥을 깔아야하나...난...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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