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20210303 다모임, 1년 살이 계획, 날이랑 쓰는 법, 체육

홍풀 2021. 3. 3. 21:10

아침에 전철 안에서 불교동화책을 읽었다. 첫 페이지. 우리반에 이 말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데 아이라서... 뭔가 이야기로 들려줘야 할 거 같다. 얼른 알맞는 동화를 찾아 읽어줘야겠다. 이 책은 종교색이 없고, 뭔가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잘 골라서 읽어줄 거다.

 

1교시 다모임. 전학년이 모여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 자기 소개하기, 할머님들 호칭, 신입생 입학소감을 나눴다.

아이들이 부끄럼이 많은가보다. '000한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자고 진행하는 샘이 갑자기 말하자 첫 시작하는 친구가 뜸을 오래들여서 '어디 사는 누구'라고 하라고 했다. 이런.. 다같이 준비할 시간을 30초라도 갖고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덕분에 모든 아이들이 사는 곳과 이름을 알렸다. 아... 뭔가 번죽 좋은 친구가 없네...라고 하는데 우리반 도움반 친구가 큰소리로 인사해줘서 좋았다. 무대체질인가보다. ㅎ 전학 온 아이도 씩씩하게 잘 부탁드린다고 90도 인사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1학년 유일한 여자아이는 학교 온 소감이 어떠냐고 했더니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는지 대답을 바로 안했다. 담임샘이 어제 오늘 학교 와서 어떻냐고 다시 물었는데  '기분을 엄마가 가져가버렸어요.' 라고 했다. 완전 깜짝 놀라서 내 눈이 3배는 커졌던 것 같다. 소름이 돋았다. 헐... 꼬마 시인이 왔다. 담임샘이 놀라 왜냐고 묻자 '몰라요. 필요한가봐요. '라고 했다. 헐... 뭐지... 

 

 

한 할머님은 9살 때 6.25가 터져서 시대가 안 좋아서 학교에 못 다니셨다고 하셨다. 피난 다니느라 정신 없으셨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동생과 언니는 조금이라도 학교 다녔는데 할머님은 아예 못 다녔다고 하셨다. 왜냐고 묻고 싶었으나 왠지 눈치가 보였다. 바빠보이는 샘이 계셔서 왠지 길어지면 안될 거 같았다. 나의 쓸데없는 눈치보기... 이러지 말자.

 

한 할머니는 6학년 손녀와 같이 다니시는데 손녀가 부끄러워할까봐 걱정이셨나보다. 손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손녀가 깍두기 공책도 줬다고 손녀 칭찬을 하신다. 다른 할머니께서도 다른 집이면 부끄럽다고 오지 말라고 했을 거라며 칭찬을 얹으신다. 음... 난 할머니가 자랑스러울 거 같은데... 큰 자리에서 말하는 게 아직 어렵나보다. 언젠가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아, 한 분은 어렸을 때 배운 건 안 잊어버리는데, 요즘은 한 귀로 들어왔다가 한 귀로 빠져나간다고 하셨다. 그러자 1학년샘이 한 귀를 막고 수업하면 된다고 하셨다. 하하.

할머님과 우리반 아이들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 마을 이야기도 듣고,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책을 내도 좋을 거 같다. 쉬는 시간에 찾아가야겠다.

다음 주에는 1년 행사를 계획하기로 했다. 반별로 하고 싶은 행사 생각해오는 게 숙제다.

 

다모임 끝나고 교실로 돌아와 다모임에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고 칠판에 적으며 정리했다. 한 귀로 흘린 거 같더니 누군가가 얘기를 하니 다행히 조금씩 기억이 나는지 10가지는 떠올린 거 같다. 6.25, 자신있게 발표했지만 부끄러웠던 거, 기분을 가져간 거, 집이 좋아 학교가 싫다는 1학년 남자 아이, 어릴 때 배우라는 거, 등등

그리고 글쓰기를 했다. 쉬는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집중하는 모습. 도움반 친구와 놀러 나가며 다 하면 나오라고 하는데 저렇게 멋지게 집중한다.

쉬는 시간 30분. 유치원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구역이 정해져있어서 나도 했는데...  이 녀석들 치사하게 나만 술래시키려고 해서 너무 하다고 했더니 이제 안 그럴 거란다. ㅎㅎ 바로 인정하는 거 멋지다.

도움반 친구가 신나서 같이 해서 좋았는데 다른 아이들이  계속 안 잡히니까 포기한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좀 잡혀주라고 했는데 안 잡혀준다. 이런... 그래서 그냥 내가 잡혀줬다. 이 어르신을 ...  심장이 몇 번 터질 거 같았다. 심장운동엔 술래잡기!

5분 남아서 들어가려는데 달리기 시합을 하잔다. 음... 난 참 경쟁이 싫은데... 벌써 전학 온 아이는 빠진다. 자기가 질 게 뻔하다며. 나도 도저히 못 뛰겠다고 했다. 그래서 둘이 하는데 1,2등 아니고 그냥 각자 자기 기록 재준다고 했다. 7살부터 축구로 다진 체력을 뽐내며 직선으로 뛰는 아이, 삐뚤빼뚤 달리는 아이. ㅎㅎ 둘이 그래도 한 5초 차이 밖에 안났다. 나한테 엄청 졸라서 내일 운동장 안 질퍽거리면 같이 뛰자고 했다. 괜한 짓을 한 거 같다. 그러더니 아직도 기운이 남는지 한 번 더 달리겠단다. 갑자기 전학 온 아이도 하겠단다. 멀리서 와서 장갑과 옷도 내게 맡기고 시간을 끈다. 그랬더니 다른 한 명도 시간을 끌며 잠바를 벗고 간다. 아주 가벼워져서 더 빨라질 수 있을 거란다. ㅎㅎㅎㅎㅎㅎ  으이구... 귀여운 녀석들...

 

시작 소리와 함께 열심히 뛴다. 이젠 직선으로 같이 뛴다. 반환점을 돌며 큰 차이가 나자, 전학 온 친구가 배를 잡으며 멈춘다. 끝까지 가긴 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더 멀리 가서 유치원 미끄럼틀에 간다. 엥?  다른 친구들은 아까보다 조금씩 기록이 좋아졌다며 좋아하더니, 전학온 친구가 삐진 거 아니냐고 한다.

"아니, 안 삐졌을 거야. 좀 쉬고 배 안 아파지면 올 거야. "

그러길 바랐다. 꼴찌한 게 부끄러워 아픈 척 한 게 아니길 바란다. ㅎㅎㅎ

 

교실로 와서 수업준비하는데 바로 들어왔다. 이제 배 괜찮냐고 하니 아픈 얼굴로 고개만 끄덕인다. 아침 많이 먹고 뛰면 좀 아플 때가 있다고 하니 아침 안 먹었단다. 그래? 그럼 배가 잠깐 놀랐나? 하고 더 얘기 안 하고 수업했다. ㅎ

 

2블럭.

1년 살이 계획 세우기. 이렇게 세웠다. 중간중간 얼른 하고 싶으지 세부 계획까지 하자는 의견을 말리느라 힘들었다. ㅎㅎ

 

매일 숙제하는 공책이름이 날이랑이다. 그 공책 쓰는 법은 한 2-3주 알려줘야 한다. 제대로 쓰기 어렵다. 할 일을 확인하고, 알림장을 쓰고, 나와 다른 이에게 감사하고, 기여한 것을 쓰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오늘 들은 긍정적인 말을 잘 기억했다가 적는다.  그리고 마음일기를 쓴다. 마음에 남은 한 가지 일을 쓰며 내 마음을 알아주고 앞으로 어떻게 마음을 쓸지 생각하는 거다. 감사로 마무리 한다.  오른쪽엔 그날 배운 지식과 지혜를 정리하고, 낱말을 찾아 뜻과 글짓기를 하고, 한자, 영어 하나씩 써 본다.   

점심에 짜장면이 나왔다. 교실에서 말 없이 먹는 건 참 힘들다. 너무 말하고 싶다. ㅎㅎ 코로나 덕분에 음식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건가. 눈과 손짓발짓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 수화를 배워볼까나...

 

5교시 전체 체육이 아니었네... 나만 체육 잡았다. 잘 됐다. 산책을 벌써 실행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좀 늦어서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전학 온 아이가 또 설레발이다. 아이들 옷을 잡고 끌며 한 줄을 세운다. 기다리는 척 그냥 두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리고 그 녀석은 맨 앞에 선다. 1등을 너무 좋아한다. 어쩌지...  다른 아이들이 기분 나쁘다고 말 안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 00이, 왜 그래?

전 한 줄 서야 할 거 같아서 미리 세운 건데요.

- 뭐 잘못한 거 있는 거 같은데.

아이들 옷 잡고 끌어당겼어요.

- 또?

...

-  너만 자꾸 앞에 서야 할까? 점심시간에 공평하게 한 칸씩 뒤로 가자며. 너가 정했잖아. 이것도 정해야 해?

그런데  한 줄 설 필요 없잖아요.

- (불리할 때 말돌리는 거 다 안다.)  너가 세웠잖아. 샘은 그렇게 한 적 없는데? 찻길이나까 그렇게 하려고 했지. 그런데 순서를 너 맘대로 정한 게 문제인 거야. 그리고 앞이 좋은 것만은 아니야. 앞은 제일 위험하지. 차도 봐야 하고 동물 식물도 봐야 하고, 땅 상태도 어떤지 모르잖아. 그래서 샘이 제일 앞에 서는 거야. 모두를 안전하게 하려고. 그리고 맨 뒤도 아주 중요하지. 그래서 형아한테 부탁할 거야. 차 없을 때 안전하게 빨리 건널 거야. 그걸 형이 도와줄 거고. 넌 도움반 친구를 지켜야 해.

 

도로로 한 50미터 걷는데 차가 한 대 왔다. 다 멈추는데 도움반 친구가 움직여서 긴장했다. 다행히 차도 천천히 와줬다. 감사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혼난 그 아이가 천천히 왔고, 차가 왔다.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차도 놀랐는지 섰다. 사람이 잘 안다니는 시골길은 차도 사람도 놀란다. 아... 식겁했다. 또 잔소리를 하려다가 참았다. 산책 혼자 못 데리고 다닐 거 같다. 이 5명...

 

눈길도 지나고, 질퍽한 땅도 지나고, 큰 개똥도 봤다. ㅋ 큰 개똥을 두 명이 눈으로 덮는다. 다른 사람이 못 보고 밟도록 하고 싶단다. 헐... 말 안 듣는다. 자기도 밟을 수 있는데... 이 녀석들... 장난꾸러기들이다. 다음엔 못 하게 해야지. 너무 힘들면 제때 교육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곰발자국 만드는 법, 개발자국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눈 위에 발자국도 만든다. 한 아이가 천사 보여줄까요? 하더니 눕고 팔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앗... 추울 건데...  3명이나 누워서 천사가 된다. 추운 게 문제가 아닌 거다. ^^

 

 

다른 아이들 집에 가고 더 산책하고 싶은 아이들과 마을회관에 갔다. 2층이 운동시설과 도서관이다.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열심히 운동한다. 뭐 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나면 열심히 해본다. 4학년 형아는 책 이것 저것 보며 말놀이에 열심이다. 동생은 도서관 벽 자동차 장난감에 열심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학교 오는 길 경쟁 좋아하는 이 동생이 '학교까지 누가 먼저 가나'라고 하자 형아는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들은 척도 안하고 동생이 달리자 몇 번 거절했던 터인지 그냥 따라잡아 주고 이겼다. 이 동생...지자 뭐라고 하며 핑계를 댄다. 올림픽 대표 선수를 만들어야 하나... 뭐 이렇게 1등에 연연하는지... 형이 발이 아프다는데 뛰게 만들고...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 매번 얘기하면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