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20190104 졸업식

홍풀 2019. 1. 6. 00:02

 

12월, 문집을 만들고 성적처리를 하면서부터 잠깐씩 찡 했었다. 처음과 이렇게 다른 마음을 갖게 하는 아이들이라니. 정말 예뻤다. 요즘.

 

왜? 어떻게 내 마음이 달라졌을까?

 

몇몇 신경쓰이던 아이들이 행복해지면서 교실 분위기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남을 기분나쁘게 하면서 주의를 끌려던 아이들이 덜 그런다. 더 많이 웃고. 거슬리지 않는다. 거의.

좋아하는 친구가 생겨서 그런 건가. 요즘 칭찬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가정이 더 행복해졌나. 마음공부 덕인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래도 답을 내리긴 좀 그렇다. 누구도 잘 알 수 없는 거다. 어쨌든 모두 더 행복해졌다.

 

6학년이 이렇게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니. 이럴 순 없다. 첨엔 나쁜 건 줄 알았다.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아이들의 강점이다. 재잘재잘, 투닥투닥, 때론 난리법석. 틀에 잘 갇히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은 즐겁게 열심히 해낸다. 때로 속 찬 말을 한다. 가끔 욱하지만 정말 매력덩어리다. 무대에서 정말 강하다.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만큼 자기를 사랑한다는 건가? 계속 그렇게 살면 좋겠다. 괜히 숫자로 주눅들지 말라고 말은 했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졸업식.

 

아이들이 정한 목적은 감사, 축하, 웃음.

울고 싶지 않단다. 그래서 웃음을 주고 싶단다. 정말 기발하다.

 

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감사글을 스스로 읽게 했다. 아이들도 물론 내 생각에 동의했다.

 

감사하고 싶은 대상은 선생님, 가족, 동생, 물건, 우주, 친구. 각자 이들에게 쓴 글들을 두 친구가 모아서 문서로 만들고 편집했고, 난 받아서 어색하지 않게 다듬었다. 그리고 14명이 골고루 돌아가며 읽었다. 연습할 때와 달리 무대 위에선 다른 친구가 읽을 때 몸까지 돌려 함께 읽는 마음으로 진실하고 진지했다. 이 무대체질 녀석들.

 

웃음을 드리기 위해 낸 생각들은

1. 누구일까요? - 다른 친구가 되어 연기하고 그게 누구일지 맞추게 하는 것. 이걸 맡은 아이는 일년 동안 안 보여준 실력과 재능과 집중력을 다 쏟았다. 그 이후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만방에 알린 후 표정이 좀 달라졌다.

아이들은 친구의 특징을 잘 잡아 부풀려 더 재밌게 표현했다. 자기들끼리 만들면서 엄청 재밌었을 거고, 관객인 가족들도 우리 아이가 저런 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아셨을 거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2. 6년동안 웃겼던 일 - 이건 연극으로 하려고 했는데 무대를 자기들도 감상하고 싶다며 영상으로 바꿨다. 부끄럽기도 하다나. 사실 맨정신으로 연극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을 거다. 2학년 때 악랄한? 선생님과 마을을 쏘다니며 지도를 만든 일이 결국 자기들이 심하게 활동적이어서 하신 활동이었을 거라는 이야기, 3학년 때 선생님 똥침사건, 남자들 수업 땡땡이 사건, 5학년 때 숙제 많다고 투덜대면서 선생님한테 한 남자 아이가 '안 줄여주면 울꼬예요!'하고 결국 안되자 귀여운 앙탈 "흥! 칫! 뿡!" 한 이야기.

졸업식 당일에 받아서 맘을 졸이긴 했지만 처음 보는 거라 나도 더 재밌게 봤다.

 

3. 김건모 -my son. 한 번은 뮤비만, 한 번은 노래가사를 바꿔 우리들 목소리로 부른 후 뮤비로 만들었다. 공부는 못해도 난 훌륭한 가수가 된 김건모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담은 노래이니 딱 자기들 노래. 그래서인지 연기실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편집도 잘 했다. 이렇게 잘 하는 걸 마지막에 보여주다니... 미안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고 떠나서.

 

축하는 후배들은 편지로, 선생님들은 춤으로, 가족들은 영상편지와 노래로 해줬음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1-6학년 담임이 다 한마디씩 했다. 1학년 담임이었던 현재 장학사님이 와주셨다. 그런데 훌쩍이셔서 뒤의 담임들이 다 눈물샘이 열리게 만들었다. 너희들 만나 힘들었다는 솔직한 이야기. ㅎㅎ 난 12월 마무리하면서부터 이별이 슬퍼 눈물이 났었다는 이야기와 너희는 철없는 거 아니고 순수하도 귀엽도 사랑스러운 거고 평생 그렇게 살아달라는 말을 했다. 울먹이는 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 이런 공감능력 많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학교가 좋은 거였나보다.

교장샘도 울었다. 하하. 아직 교사 감성이 남아있는 좋은 교장샘이다.

 

가족들 글과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도 감동이었다. 재밌고 귀엽고 뭉클한 감동. 가족들도 역시 발랄하고 창의적이고 순수한 느낌이었다. 그리도 노래는 '무조건' 하하. 정말 창의적!!

 

마무리는 졸업식노래 대신 '꿈꾸지 않으면'과 교가.

정말 명곡이다.

 

교사들 아이들 단체 사진 찍고 모델 좀 하다가 교실에서 정리하는데 다들 오셔서 감사하다며 케잌과 꽃을 주셨다.

아이들과 포옹하고 헤어질 수 있는 기회도 주셨다. 다 잘 안는데 한 녀석만 엄청 부끄러워한다. 이녀석.. 나도 여자로 보였나보다. 하긴 성에 눈뜰 나이이긴 하다만...

모든 직원들이 먹을 만큼의 예쁘고 맛난 케잌을 주셔서 정말 감동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이들이 잘 닮은 거다.

 

맘이 싱숭생숭하야 단체 점심회식 자리에 안 가고 바로 1박 연수장소로 갔다. 운전하는 동안 못한 말들이 떠올랐다. 이 못되고 철저하고 화 잘 내는 샘과 즐겁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 했다. 부모님들 사랑 듬뿍 주시며 잘 키워 주신 것도.

 

내년엔 드디어 6학년을 안한다. 많이 걱정되지만.. 많이 아쉽기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과도 잘 지내보련다. 긍정긍정하며 걱정 안해야 더 좋다는데 자꾸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