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금요일 다모임 때 운동회 이름과 하고 싶은 놀이를 정했다. 아이들이 말한 20여가지의 운동을 장애물 달리기에 다 넣어 윗몸일으키기, 물풍선 빼고는 다 넣었다. 14종목의 놀이를 9-12시까지 했다.
교사는 쉴 시간이 없어 눈치보며 쉬었고, 못 쉰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틈틈이 물 마시고 과자 먹으면서도 내내 움직였다. 14종목 하고 나면 아이들이 지쳐서 급식 먹으며 조는 게 내 상상이었는데... 나만 그랬다. 아이들의 체력을... 못 이긴지 몇 년 째... 체력 말고 다른 걸로 승부해야 한다.
첫 마당은 경쟁심 돋기 쉬운 달리기 마당. 마지막에 하면 너무 영향이 오래가니까 앞에 하자고 했다. 다른 학교에서 항상 계주가 마무리였다. 그래서 영웅이 탄생하거나 손가락질 받는 아이가 나온다. 그래서 앞 부분에 넣어서 마무리는 다같이 흥겹게 끝나는 걸로 했다.
첫 종목은 장애물 달리기. 사회 본 샘이 거의 팀 경기였지만 경쟁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잘 했다. 마을 어른들, 학부모님들께서 훌라후프, 줄넘기, 과자 따먹기, 림보 하는 곳에서 도와주셔서 더욱 서로를 잘 알고 움직이며 즐기실 수 있어서 좋았다. 교사도 좋지만 이렇게 참여하며 마을 아이들과 학생들과 친해질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뜻 도와주셔서 참 감사하다.
두 번째 경기는 이어달리기. 80대 할머니 학생의 짝이 없네. 교사들 모두 체력을 아끼려고 빼는 순간, 교감선생님이 나서주셨다. 우리 할머니 얼마만에 남정네 손을 잡으시려나^^ 성화봉송처럼 바톤 봉송이 갑자기 생겼다. 걷는 듯 뛰는 듯 두 분이 정답고 안전하게 뛰셨다. 나이들어 건강하셔서 참 행복하시겠다. 교감샘 감사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유치원샘을 따라 한 바퀴를 다 뛰었고 1학년도 한 바퀴 뛰는 건 우습다. 중간 중간 특수반 친구들이 열심히 안 뛰어서 차이도 많이 벌어지고 긴장감이 없었고, 결승선을 끝까지 끊는 경기일 뿐 승패에 관해서 신기하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있으니까 중요도가 떨어졌다.
어른들 이어달리기도 했다. 달리고 싶으신 분들 나오시라고 했는데 학부모님과 중년이신 할머니 아드님도 나오셨다. 역시 젊은 부모님들 잘 뛰신다. 마지막에 두 아버님. 오... 이거 경쟁하면 넘어지고 다치는데... 그런데 한 분이 작게 "같이 와요." 하신다. 살짝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시다가 똑같이 오셨다.
아름답다. 내가 예전에 애들 저렇게 시켰다가 교장한테 한 소리 들었었는데... 승부가 중요한 운동회가 아니니까 아름다운 마무리 좋다고 생각한다.
2인 3각도 했다. 가족끼리 하는 운동. 다행히 가족이 못 온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둘인 부모님은 두 번.^^ 그래도 다들 건강하셔서 쉽게 하신다. 연습하고 온 것처럼 착착 맞는 팀도 여럿있었다. 다 큰 아들 손도 잡고 팔짱 끼기가 쉬운가. 이럴 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더 친해지는 거다. 예전엔 샘들도 많이 손잡고 안아주고 했는데... 성범죄며 코로나 때문에 그런 따뜻함은 나눌 수가 없어졌다. 그 때 많은 분들이 정서적 문제가 많이 생길 거라고 하셨었는데... 그런 거 같다.
우리반 도움반 친구는 작년 3학년 때는 음악 시끄럽고 운동하기 싫어해서 쉬면서 먹기만 했었는데, 새로 오신 샘은 4학년부터는 다 해야 한다며 머리 방향 잡아주시며 같이 뛰셨다. 허리도 엄청 아프신대... 걱정이지만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거의 모든 경기를 참여했다. 이젠 당연히 열외가 되는 아이가 아니게 되었다. 정말 대단하시다.
축구 대신 바꾼 운동. 공을 요리조리 몰아서 돌아오는 운동이다. 다들 잘 한다. 1학년도 몸을 꽤 쓴다. 이 땐 힘들어서 난 멀리서 앉아 있었다. 에효... 이 때 먹은 방앗간 백설기. 콩에 잣에 호박에 안 들어간 게 없다. 이렇게 맛있는 떡은 처음이다. 따뜻할 때 먹어서 그런가?? 이제부터 떡은 이 집이다.
공으로 과녁 맞추기도 했는데... 이런... 과녁의 간격이 너무 좁다. 어딜 맞췄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더 세심했어야 했다. 저건.. 움... 바닥에 놓고 콩주머니 던져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아직 위로 차는 기술이 없다. 고학년 몇 명만 할 수 있다. 계속 걸어놓고 갖고 놀다 보면 저절로 그 기술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원피구. 팀을 나눠서 하는 피구는 저학년이 잘 몰라서 간단한 형식으로 했는데 덜 경쟁적이고 좋다. 그냥 아무나 맞출 수 있다. 아이한텐 살살 던지는 것도 배우고, 공 잘 잡는 형들이 못 잡은 동생들에게 던지라고 양보도 한다. 재밌던 건 부부끼리 맞히고, 우리 엄마, 아빠 맞힌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보다 덜 미안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거였나?
알콩달콩해 보였다.
어르신 경기. 9시에 오셔서 11시까지 기다리신 마을 어르신들. 한 10여 분 오신 거 같다. 곱게 차려입고 오셨다. 그래도 정정하신 분들만 오셨는지 긴 낚싯대도 번쩍 들고 오신다. 바닷 속에 들어가 앉은 아이도 신나고, 그걸 지켜보는 아이도 신나고, 상품이 남아 엄마 아빠랑 아이들이 같이 뽑기도 한다. 이미 상품이 뭔지 알아챈 아이들. 한 아이는 누나와 왔는데 소주와 오징어. 싫다고 바꿔 달란다. 헐... 아빠 선물 하면 되지. 아주 실속있는 아이들이다. ^^ 난 그런 말 못 하는데... 경기하는 사람들 번거롭게 하면서 내 거 못 챙기는데... 나랑 다르다. 당연하게도.
팀별로 판 뒤집기. 이럴 수가... 이렇게 치열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경기였다니. 아직도 하나도 지치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 딱이었다. 샘들은 쉴 수 있다. ^^ 아빠들이 애기랑 숨바꼭질 놀이 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 둘이서 붙어 앉아서 서로 싸우듯 바로바로 남의 것 뒤집는 쪼잔한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지쳤나보다. 드디어~~~^^
우
아이스크림 먹으며 쉬었다가 컬링과 비슷한 볼링을 했다. 페트병에 물 반쯤 담았다. 농구공으로 해야 그나마 쓰러진다. 각반에 주어진 10개의 핀을 끈기있게 끝까지 넘어뜨려야 한다. 할머니가 엄청 잘 하셔서 놀랐고, 도움반 친구는 가까이 가서 맞추려다가 몇 번 제지 당했다. 반칙이 뭔지 배워야 겠다.
줄다리기. 청팀 백팀 아이들과 학부모가 다 같이 해서 한 편이 이겼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힘센 아빠들이 있는 곳이 이긴다. 그래서 나도 나갔다. 한 팀이 일방적으로 이기면 그럴 거 같아서 한 판이라도 이기게 해줬다. ^^
다음은 어린이 대 어른! 사회자가 내일은 무슨 날이죠? 라고 묻는 바람에 한 판 져줬다. 너무 시시하게 져줬다. 져줄 거면 아슬아슬하게 이기게 해줘야 더 뿌듯했을텐데... 아쉽다. 아이들이 신나게 끝내지 못했다.
줄정리도 척척 나서주시는 아버님들. 슈퍼맨 같다. 우리 샘들 다 힘 빠졌는데 아버님들은 안 지치셨는지 다 옮겨주시고 정리해주셨다. 일머리도 장난 아니시다. 감사하다. 점심 때 다같이 모여서 드시면서 한 잔하고 그러셔야 하는데... 옛날 운동회처럼. ^^
아직 안 끝났다. 박터트리기! 추억의 경기. 난 안 하고 싶었는데... 하자고 하자고 하자고 하던 샘이 자기가 안 들고 힘센 아빠 시킨다. 난 부탁도 잘 못하는데... 그렇게 살아야 한다. 아버님도 아주 좋아하셨다. 아이들 기억에도 00이 아빠가 얼마나 기억에 오래 남을까? 그리고 언젠가 자기들도 그런 봉사 해주겠지? 샘들이 하는 건 당연해서 잘 모르니깐... 한 5분 걸린 거 같다. 몇몇 아버님들 덕분에 터졌다. 아이들이 쓴 글귀가 나왔다.
'어린이는 보물'
'우리 한마당 짱!'
아이들에게 맡기니 이런 멋진 말이 나온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마무리 체조 하는데 우주선이 왔다 갔다. 왠지 내년에도 또 올 것 같다. 이거 애들한테 보여줘야지~~~~~ 그리고 동화 한 편 쓰면 좋겠다. 오~~ 좋은 아이디어다!! 아이들 각자 자기를 주인공으로 운동회를 동화로 만들기~~~~!!!!! 그림도 그려넣고. 출판도 해줘야겠다!!
밥 먹고 다 정리 하고 2시가 되었고, 총괄 겸 진행을 맡은 샘이 20분 달려 찻집에서 평가회 하자고 했단다. 가기 싫었다. 교장샘이 회식 하자고 할 땐 다 어디 갈거라며 다 가버릴 듯 해놓고 변덕이다. 그래서 난 조퇴 미리 달았는데... 그리고 천막 들다가 허리도 아팠고, 팔을 들 힘도 없는데... 이런... 내가 분위기 망쳤다. 다들 간다는데... 그냥 학교에 앉아서 얘기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난 계획에도 없는 거 하는 거 싫다. 큰일이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 어쩔 땐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어쩔 땐 아니다. 음...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사람들이 대세에 안 따르는 나를 불편해 할 것 같다. 괜찮다. 변덕부린 게 누군데. 그런데...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욕 좀 먹어야 오래 살텐데... 욕먹는 걸 이렇게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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