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6.10(토) 9살->30살 제자 가족과 만남

홍풀 2023. 6. 10. 23:14

이런 저런 일로 많이 쳐져 있었던 5월... 

통합메신저로 도교육청에서 스승찾기한 제자가 있다며 제자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오. 바로 떠오른다. 과거를 바로 잊는 나인데... 눈이 초롱초롱하고 까무잡잡한 귀여운 남자 아이. 

난 당연히 그 제자에게 연락이 닿았다고 답신이 갔을 줄 알았다. 

 

반가웠지만 내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나같은... 사람을... ... 하는 마음에...

뭐든 하고 싶지 않았던 때라 2주 넘어서야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저녁 연락이 왔다. 

아이 때 음색이 살짝 남아있는 예의바른 청년의 목소리였다. 

2학년 때 사진을 보고 너무 감사했다며 찾아뵙고 싶단다. 앗... 난 그저... 마음가는대로 마음을 썼던 것 뿐인데...

그걸 감사하다며 21년만에 연락을 주다니... 세상에...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는 거였어?

세세하게 내 음식취향을 묻고, 어디서 만나야 내가 편할지 배려하며 힘들게 잡은 자리.

 

난 변변한 옷도 없어서 급히 새로 티셔츠를 사고 어제 머리도 다듬었다.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지만... 학교는 아이들과 놀기 편한 옷이 최고지만... 이럴 땐 좀 예쁘게 보이고 싶었나보다. 화장은 못 하니 옷이라도 더 깔끔하게 입어야지... 했으나 뭐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장이라도 한 벌 샀어야 하나... 

 

어젯밤 잘 못 잤다. 기차시간에 늦을까봐... 어떻게 대해야 하나... 예전 모습이 좋게 남아있으면 많이 실망할 거 같은데 하며...  그런데... 좋은 사람인 척 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날 보이자. 마음 먹고 갔다.  어떻게 보이든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까. 

 

서울역 고급 중식당. 뜨아.. . 서울역에 이런 데가 있었구나. 이 녀석 성공했나봐~~~  애 키우면서 이런데도 다니고...

그 아이의 어릴적 깜찍함을 고대로 빼다박은 4살 여자 아이와 예쁘고 야물어 보이는 아이 엄마, 그리고 반듯하고 건장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카톡 사진으로 봐서 딱 알아봤다.  그런데... 꽃다발과 빵 선물까지 준비해왔다. 앗... 나도 선물하고 싶었는데 괜히 부담줄까봐 참았는데... 이런... ㅜㅜ 

 

 부인이 붙임성이 좋고 당당하다. 내 주변에 없는 유형. 00이는 아이 때와 달리 내성적인데 상냥하고 예의바르다. 말에 깊이가 있다.  날 찾으면서 겪은 시행착오들과 어릴 때 우리집에 왔던 기억들을 꺼낸다. 기억력도 좋다. 자기가 할머니와 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다 정신차리고 경찰이 된 이야기. 지금 하는 일들...  대통령실 경호업무를 하고 있단다. 뜨아...  나랑 정치색이 너무 달라서 나 싫어하면 어쩌지 하며 노란 리본이 신경쓰였다. 뭐야... 다르면 다른 거지... 

 

 그래... 학창시절 공부 ... 그거 별거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건 진실이고....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공부가 진짜 잘 된다. 공부 아닌 게 없고.  부모님 사랑을 못 받았다는 얘기도 하다가 생각해보면 도움주신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단다.  그래...  어려운 집 아이들이 성공하는 비율이 70퍼센트인가 그렇댔어. 위인들 중에서...   참 잘 컸다. 자수성가해서 혼자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멋지게 컸다. 눈이 아이처럼 여전히 맑다. 좋은 경찰이 된 거 같다. 

 

 너무나 맛있는 음식들을 돈아깝지 않게 맛있게 먹었다. 아이가 칭얼대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해서 사주겠다고 했다. 아래층까지 가봤는데 자리가 없다. 그랬더니 차로 좋은 정원이 있는 카페로 가잔다. 음... 그래. 내가 꼭 사줘야지 맘이 편하겠어...  처음인데 처음 만난 사람들 같지가 않다. 사직공원 매동초 옆 까페로 갔다. 서울 운전도 잘 한다. 조분조분 말도 잘 하고, 아이는 어느새 마음이 풀려서 노래도 하고 나한테 반말로 장난도 친다.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4살이 저렇게 말을 잘 하다니. 똑똑하다. 총명하다. 

 

 난 자두주스. 오~ 진짜 예쁘고 맛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 아주 맛있다며 거의 다 먹었다. 그러더니 참새랑 놀고 아빠랑 술래잡기 하고 엄마랑 달리기 시합하고... ㅎㅎㅎ 손주를 보고 있는 느낌이 이러려나... ㅎㅎㅎ  작은 손가방에 강아지가 그려져 있어서 사주려고 했더니 재고가 없단다. ㅜㅜ  이런..  결국 선물을 못해줬다.  

 

 그리고  가고 싶었던 덕수궁에 데려다 주겠다는데 그냥 걸어가겠다고 했다. 티벳 카페도 보고, 인도옷집도 보고 경복궁 지나쳐 종각까지 왔다. 비가 오려고 꾸물거렸고... 급 피곤해졌다.  너무 행복해서 피곤했다.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다. 나도 모르게 죽을 때 오늘이 생각날 거 같다고 했다. 죽을 때 오늘이 생각날 거 같다...  나도 모르게 ... 이런 말이 불쑥. 내 행복은 이런 데 있나보다. 나 기억 잘 못하는데... 자신있나보다. 

 

허접한 나. 화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나. 그래도 어딘가 있는 내 따뜻함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