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도 여전히 업무카톡이 울렸다. 일부러 안 봤다. 어케든 되겠지. 입학식 뭐.
난 업무시간 외에 업무 얘기하는 게 싫다. 정 급하면 따로 전화하겠지.
나는 나대로 마음만 바빴다. 뭘해도 집중이 안 됐다. 3학년에 할머니들이 계신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들끼리 갈등이 있다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공부도 안되고 집안일도 안되고 마음만 심란했다. 난 왜 아직도 새학년 맞이가 힘든가... 하면서.
3.2 아침 7시 알람이 울렸고... 잠시 생각하다가 미리 해야 할 일 때문에 학교에 일찍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만에 챙겨입고 길을 나섰다.
학교 교실에 갔는데... 아뿔싸... 한 할머니가 일찍 와 계신다. 난 할 일이 있는데... 나만 보신다. 그냥 할머니 하실 일 하시면 되는데... 내 할일을 못 하고 허둥거렸다. 할머님도 지키미여사님과 학교 구경하신다며 나가셨다. 눈치채셨나보다. 뭐라도 해드리게 하려고 오늘 입학식 동생맞이 노래를 연습했다. 학생들이 띄엄 띄엄 시간차를 두고 오니 내가 노래를 많이 해야 했다. 할머님들은 노래에 관심이 없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고, 한 할머님은 걸음보조기구를 가지고 오셔서 내 의자, 내 방석, 내 책을 가져다 달라며 여기저기 부탁하신다. 그 할머니 자리를 조정하고,,, 도움반 친구는 계속 시간표와 급식을 묻고, 3학년 남자 아이는 자기 얘기 들어달라며 계속 말을 건다. 아....... 우짜꼬...
9:00 모두 다 왔고 난 아침명상을 하자고 했다. 역시나 그 남자아이는 눈을 못 감는다. '사람만 1분 동안 눈 감고 가만히 있을 수 있어.' 했더니 소리를 낸다. '우리반에 원숭이가 있나... '했더니 조용해진다. 도움반 친구가 의자를 끄덕이며 소리내는 게 거슬렸으나 '자기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만 관찰하세요.' 했더니 아무도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오늘 자기 마음을 관찰하고 그 이유를 말할 거니까 준비되면 눈 뜨세요.' 했다.
3학년 남자아이가 자기 먼저 말하겠다며 말을 시작한다. 눈 안 뜬 사람도 있는데. 다른 사람 잠깐 기다려주자고 하니 멈칫. 다행이다. 아이들은 간단히 마음과 이유를 말하는데... 할머님들은 어제 이야기부터 주저리주저리 다 말씀하셨다. 그래도 다 들어드렸다. 처음이니까. 내일부턴 마음과 이유만 간단히 돌아가며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동생이 미적거려서 늦어서 화났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좋다. 새 교실, 새 선생님과 만나서 좋다.
난 아무 말 할 게 없다. 방학 때 그냥 살다가 학교오니 좋다.
아는 선생님이 담임이라 좋다.
아파서 안 오려고 했는데 오니까 좋다.
다들 좋았다고 하셔서 마음이 놓이고 나도 좋다.
얼른 이제 동생들 입학축하 노래 연습하고 입학식 하고 오자고 했다. 성요한 신부님의 '틀려도 괜찮아', '풀꽃' 노래를 불렀다. 3번 부르니 다 대충은 따라한다. 할머니학생들도 노래가 간단해서 좋다고 하신다. 오늘 다들 긍정적이시다.
악보를 챙겨서 6교실로 갔다. 자리가 모자란다. 얼른 창고 가서 의자를 챙겨왔다. 학부모님들도 뒤에 앉게 해드렸다. 다섯 분이니 뭐 별일도 아니다.
식이 시작되고 신입생 맞이하러 선배들이 나가서 가마를 태웠다. 후배들이 형들 목을 꽉잡고 한 10미터 같이 들어갔다. 선배들의 책임감, 그런 선배를 의지하는 마음. 여러 마음들이 아이들에게 들어왔을 거 같다.
입학허가 후 입학 선언도 선배들이랑 같이 하고, 선후배 인사도 하고, 선배들의 환영 공연이 있었다.
먼저 3,4학년 노래. 음정잡는다고 내 목소리가 제일 컸단다. 이런... 못 해도 내가 작게 할 걸... 후회된다. 그래도 앵콜도 받고 가사 좋다고 호응이 좋았다.
6학년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진짜 좋은 노래... 신입생 이름도 넣어서 불러줬다. 센스.... 6샘 마음이 깊다.
마지막으로 신입생 인터뷰. 내가 맡았다.
첫 번째 아이와의 대화.
학교 들어오니 기분 어때요?
-몰라요.
좋아요?
-아니요.
왜 싫어요?
-공부해서요.
(헐... 이럴 줄 알았다.)
무슨 색깔 좋아해요?
-연보라
오늘 언니가 연보라 입었네. 딱 알고~ 무슨 음식 좋아해요?
-도리도리
다 좋아요?
-도리도리
뭐 잘 해요?
-달리기
그렇구나. 달리기 많이 하자.
다행히 두 번째 아이부터는 말을 잘 했다. 질문 좀 준비할 걸... 그래도 아이들이 한 마디씩이라도 해서 주인공 기분을 냈다는 것만으로 만족. 휴.... 십년감수...
마무리하고 풍선 장식 앞에서 신입생 사진, 신입생과 학부모 사진, 독사진, 가족별 사진 다 찍고, 학년별 단체사진도 찍었다. 와.... 이런 학교라니... 너무 좋다. 작아서 뭐든 할 수 있다. 부모님 말씀도 다 들었으면 좋았겠다. 아쉽네....
내년엔 부모님 말씀도 들어야지.
교실로 왔다.
주간학습안내를 보며 질문하라고 했다. 질문이 없다. 삼일절이 뭔지 아는 사람~ 했는데 일본? 이런다. 할머님들도 말씀이 없으시다. 자세히는 모르셨나보다. 그래서 역사시간이 되었다. 일본이 힘세다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괴롭히고 지들 땅이라고 했지. 그러다가 10년만에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국민의 1/10이 나섰어. 장터에 모여서 몰래 만든 태극기를 흔들었지.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갔는데 15살도 있었고 60넘은 노인들도 있었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쳐 가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36년이나 싸웠어. 그래서 우리가 지금 평화롭게 한글로 말하며 살고 있는 거야. 아니었음 우리 일본의 노예로 살고 있을 걸... 러일전쟁부터 6.25, 뭐 그런얘기하다가 한 할머니가 물으셨다.
'그런데 어제 일본태극기 단 사람은 누구래요?'
어제 세종시에서 일장기 단 사람들 뉴스를 들으셨나보다. 대통령 얘기 듣고 달았다던데 일본인은 아니라는데 일본인이라고 하고 뭐 이상한 사람인가봐요. 옛날 같으면 마을에서 쫓겨났겠죠?
역사 공부 안 하면 그런 사람 되는 거라고, 또 일본같은 나라한테 당할 수 있다고 열심히 공부하자고 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정리하는데 ....
첫째 할머니께서 가방을 메고 갈 거라고 하신다. 동생분이 아니라고 점심 먹고 가기로 했다는데 막무가내. 결국 수업중 남편분께 전화를 걸고 안 받고 나중에 전화가 왔고 할아버지가 점심 먹고 하라는 소리가 다 들렸는데.... 할머니가 앉아서 공부하시다가 가방을 챙기셔서 아니라고 하고 또 글을 쓰다가 가방을 싸시고 또 아니라고 하고... 아.....
수업이 좀 정신 없다. 그래도 3학년 아이들은 익숙한지 자기 일 잘 하고 있다. 그래... 또 이렇게 적응하고 자기 할일 하며 사는 거지.... 내가 좀 배워야겠다.
그래도 틀리지만 모두 글을 쓰고 자기 생각을 꺼낸다. 열심히 한다. 나도 앉을 틈이 없었지만 글을 완성하는 재미를 함께 느꼈다.
점심을 먹고 할머님들은 후딱 가시고, 아이들만 남아 마무리를 했다. 마무리 시를 읽고 감사나누기를 하는데...
샘이 음정을 잡아줘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해주신 독립운동가분들이 고맙다.
라고 했다. 아... 삼일절 가르친 보람이 있다.
첫 날.... 정신없지만... 걱정한 것보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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