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은 아이들과만 수업했다. 3월 말 양수리와 여운형기념관에 갈 거라서 여운형 이야기 책을 꺼내들었다.
교사 출신이 쓴 책이라 양평의 이것저것을 담고 초등 중학년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쓰여 있다. 시간여행으로 태양이를 만난다는 이야기. 조선으로 가는 과정이 신기해서 아이들이 혹 빠진다.
책 내용 중에 배 서리하다가 태양이 실수로 태양이 얼굴이 긁혀 피가 났는데, 아빠가 노비들을 끌고 가서 과수원의 모든 배나무를 베어버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래서 태양이가 울면서 자기 잘못이라는데도 그 아빠는 그랬다.
감히 나무 따위가 내 귀한 종손의 얼굴에 피를 내!!!! 이런 건가보다. 2년만에 읽는데 이 장면에 나도 화가 났다. 아이들도 나쁘다고 난리였다. 다른 사람의 밥줄을 끊은 아빠를 원망하며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양이를 만났다. 앞부분만 읽어서 신분사회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다음엔 일제시대에 대해 알게 되겠지?
두 번째 시간에는 다같이 위인전을 읽자고 했다. 첫 책은 헬렌 켈러. 그 출판사 책들 중 가장 오른쪽에 있었고 괜히 끌렸는데... 우리반에 필요했던 장애인식개선교육에 딱 맞았다. 우리반 할머니학생들은 책 읽어드릴 맛이 나게 폭 빠져서 들으시고 반응도 잘 해주신다. 헬렌 켈러가 19개월 때 열병을 앓아서 눈도 귀도 못 쓰고 말도 못하게 됐다고 하니 '아이고, 아이고, 저런저런...' 하시며 두 손을 가슴에 모으시고 들으신다. 글을 배우고 2년만에 말을 배우게 됐다고 하니 애가 똑똑하단다. 손바닥에 글씨를 써 보고, 목과 얼굴에 손을 대고 말을 할 때 어떻게 변화가 생기는지 해보았다. 이걸 다 기억해서 말을 하는 거라는 걸 알고 나니 아이가 아주 똑똑하다면서 칭찬을 하셨다. 여자가 대학가기 힘든 시절에 대학까지 갔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칭찬하신다. 그리고 사회에서 강연을 통해 여러 시민운동을 하자 훌륭하다고 하신다. 세계를 돌며 강연도 하고 86세에 돌아가셨다고 하자 슬프다고 하신다. 열심히 잘 살다 가서 나는 안 슬프다고 했다. 그냥 아무 것도 모르고 성질만 부리다가 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신다. 각자 글을 쓰고 마무리하는데 할머니들은 글을 쓰는 걸 두려워하신다. '틀려도 괜찮아.' 노래를 부르면서 막 쓰시라고 나중에 다 고쳐드릴 거라고 하자 열심히 노력하신다. 1년만 고생하시면 다 쓰실 수 있다고 했더니 금방 얼굴이 밝아지신다. 아이들이 헬렌 켈러의 끈기에 대해 칭찬했고, 설리번 선생님과 50년이나 함께 하면서 공부를 했다고 놀랐다.
나도 그렇다. 50년이나... 한 아이를 위해 나를 헌신하다니... 헬렌 켈러가 그럴만한 제자였겠지. 합이 잘 맞았겠지. 보람도 있고. 아, 책 내용 중에 시각장애인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헬렌 켈러가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고 하자 한 할머니가 그건 아니라고 했다.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건 어렵다는 거다. 그래서 후천적 장애인이 더 많다고, 우리도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거라고, 그래서 모든 장애인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거라고 말했더니 입을 다무신다. 그 사람들도 모두 우리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언젠가 다시 얘기해야겠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 같다.
급식 시간. 요즘 우리반 00이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는 연습을 시작했다. 3일째구나. 그런데 오늘 좀 반항한다. '아니야, 안 먹어, 버려.' 그러다가 젓가락을 뺏겨서 반찬을 못 먹다가 다시 달라고 부탁해서 젓가락을 새로 받았다. 중간에 큰 소리로 안 먹는다고 했는데 우리가 아무도 안 도와주고, 특수샘이 '그래, 밥 버릴게.' 하자, 아니라면서 꼬리를 내렸다. 4년이나 아니 10년 넘게 포크만 쓰다가 하려니 힘들겠지. 헬렌켈러가 떠올랐다. 오냐오냐 하는 부모님과 7살까지 살다가 설리번 샘의 단호함에 다른 사람이 된 헬렌 켈러. 그래... 열매를 완성하려면 모질게 꼭지를 끊어내야 한다. 때에 맞게. 우리반 00이 얼른 적응하길 바란다. 실랑이 하시느라 힘드실텐데 밥도 늦게 드시면서 재범이 교육해주시는 우리 특수샘께 감사하다. 뭐든 대충하면 쉽고, 제대로 하려면 힘이 든 법이다. 제대로 하는 내가 되어야 할텐데... 근데 학교에는 대충해서 할 것들도 좀 있다. 그래. 대충할 건 대충, 안 그럴 건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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